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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빛을 잃었지만 별이 된 바흐

고전음악, 클래시컬 음악이라고 하면 대부분 지루함이나 고리타분함을 먼저 떠올리는 것 같다. 오죽하면 ‘고전’이란 누구나 좋은 줄 알고 있지만 아무도 보거나 듣지 않는 작품이라 했겠는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고전이란, 세월을 초월하여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고 살아남은 인류문화유산에 다름 아니다.

 

관광지를 여행하며 문화유산을 보고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즐기는 일과 긴 시간을 여행하며 베토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듣고 즐기는 일은 결국 서로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차원의 문화향유 행위인 것이다. 고전, 고전음악을 마냥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말자. 그저 유적지를 탐방하듯 오랜 세월 사람들을 감탄시킨 그 독특한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즐겨보자.

바흐를 얘기해보려 한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고정관념에 못박힌 모든 음악의 원천 바흐에 대해. 나는 가끔 우리가 고전음악을 어렵게 느끼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바흐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에게 바흐는 너무나 딱딱하고 근엄한 이미지로 각인되어있기 때문이다. 바흐의 초상화를 보자. 친근함이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과묵하고 약간 화가 난 듯한 이미지? 왼쪽은 그가 61세 때, 오른쪽은 35세 때이다.
 

61세때의 바흐, 35세 때의 바흐

 

그런데 뭔가 특이한 점이 있다. 우선 너무 인상을 쓰신다.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관찰자를 응시하는 시선. 그리고 왼 눈과 달리 오른 눈에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안과의사의 시각에서 볼 때 오른 눈은 시력이 매우 약한 듯 지나치게 바깥쪽으로 그리고 아래쪽으로 치우쳐있는 사시로 보인다. 여기서 바흐의 눈과 그의 죽음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바흐에 관한 초기 전기, 당시의 신문기사, 부고 등을 종합해보면 바흐는 노년이 되어 시력이 매우 떨어졌고 생애 마지막 해 1750년 3월 백내장 수술을 받게 되었다. 마침 라이프치히에 와있던 떠돌이 안과의사 테일러(John Taylor)로부터 였다. 테일러는 런던에서 외과의사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에서 백내장 수술(couching, 공막을 절개하여 기구를 눈 안에 넣고 수정체를 눌러 눈 뒤쪽으로 떨어뜨려버리는 전통적인 수술방법)을 익힌 정규 안과 수술의사였다.

 

그러나 한편, 수술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돌팔이’ ‘사기꾼’ ‘허풍선이’라고 매도 당하기도 했던 당대의 전형적인 외과의사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두 대의 수레마차를 끌고 유럽을 순회했고 1750년 3월 27일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바흐의 친구들은 기적의 시술을 행하는 유명한 의사가 왔다며 바흐에게 눈 수술을 받도록 권유했다.

 

수술은 광장에서 많은 구경꾼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이루어졌다.


무균, 소독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바흐는 왼 눈 수술 1주 후 다시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백내장이 다시 나타났다는 이유였다. 2차 수술 후 바흐는 안타깝게도 완전히 실명했고 심각한 눈 통증과 고열에 시달리다가 한번도 회복하지 못한 채 3개월 후 눈을 감았다.

 

왜 눈 수술을 받았는데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며, 왜 한 눈을 수술했는데 두 눈 모두 보이지 않는 완전한 실명상태가 되었을까? 그의 아들 C.P.E. 바흐에 의하면 아버지 바흐는 어릴 적부터 눈이 나빴다고 한다. 초상화에서 본 심한 눈 찡그림이 바로 그 때문일 터. 이것과 노년이 되어서도 안경 없이 오르간 악보를 보고 연주했다는 기록을 고려하면 그에게 근시, 즉 ‘바투보기’가 있었다는 점은 충분히 추측 가능하다.

 

오른 눈은 더 심한 고도근시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잘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초상화에서처럼 바깥으로 치우친 사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말년이 되어 백내장이 생기면서 점점 왼 눈 시력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상처감염이 급기야 심각한 안내염으로 발전하였고, 항생제가 없던 시절 결국 패혈증으로 합병되어 사망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호 통재라! 


테일러가 수술을 조금만 더 잘 했었다면, 아니 외과술의 발전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우리는 바흐의 더 많은 작품, 더 위대한 작품을 가질 수 있었는지 모른다.

 

당시 바흐는 최후의 유작, 그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칭해지는 푸가의 예술(Die Kunst der Fuge, BWV 1080)을 작곡하고 있었다. 눈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그는 끝내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다만 마지막 14번째 푸가 작품(3개의 주제를 가진 푸가)의 3번째 주제에 B flat–A–C–B natural 음표(독일어로 B–A–C–H 에 해당)를 넣음으로써 스스로를 음악에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 눈을 감기 열흘 전, 침상에 누운 채로 구술로 오르간 찬송가를 개작하고 곡명도 바꾸었다. 감동적인 새로운 곡의 이름은 ‘왕좌에 계신 신이시여! 이제 저는 당신께 다가갑니다’였다. 그는 죽었지만 음악은 살아남았다. 그는 빛을 잃었지만 음악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김으로써 영원히 별이 되었다.

 

이제 바흐가 남긴 미완성 유작 12번째 푸가(Contrapunctus XII inversus)를 들어보자( http://youtu.be/zSgUzEO-cNw ).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고통을 감내하며 절제된 감정으로 한 음 한 음을 구축하는 덩치 큰 남자, 신실한 한 사람의 모습이 아스라히 다가온다.

 

혹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병상에서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꾸밈없는 아름다움의 세계, 다른 것이 서로 어울리는 평화의 세계가 느껴진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떠하신지…? 실은 그의 실명을 고쳐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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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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