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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지현이의 희망 만들기

저자 : Storytelling Writer 이경진

지현이와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며 미래를 꿈꾸고 있는 모습


2009년 겨울, 지현이는 15살이었다 
심한 어지럼증과 복통으로 찾아간 병원. 심각한 표정의 의료진을 따라 엄마가 들어간 곳은 혈액종양내과였다.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현이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한참이 지나진료실에서 나온 엄마는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현이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 백혈병이구나.’


긍정소녀, 희망멘토를 만나다 
지현이는 백혈병 중에서도 고위험군에 속했다. 항암치료만으로는 완치율이 30%밖에 되지 않았다. 조혈모세포 (골수) 이식 수술을 했을 때의 완치율은 60%. 조혈모세포이식 CNS 최은석 간호사가 지현이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10살 미만의 아이들이 대부분이던 소아암 병동에 15살 여자아이가 들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최은석 간호사의 마음에는 안타까움과 염려가 뒤섞였다. ‘사춘기 여자아이가 항암 치료를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지현이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랐다. 치료만 잘 받으면 반드시 나을 거란 믿음이 강해 항암 치료 중에도 이식 수술받은 이후의 삶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식받고 나면 정말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어요?” “그럼, 이식받고 나면 학교에도 다시 다닐 수 있지.” “학교에 가도 친구들보다 1년이나 늦어졌을 텐데…” “지현아, 어른이 되면 1년쯤 늦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좌절을 모르는 긍정소녀 지현이에게 최은석 간호사는 희망을 채워주는 충전소였다. 

하나뿐인 남동생이 골수 기증자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지현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라고, 곧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주는 최은석 간호사의 응원 때문이었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최은석 간호사가 반가운 소식을 들고 나타났다. “지현아, 드디어 너에게 맞는 골수 기증자가 나타났어.” 2010년 5월, 드디어 지현이의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이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퇴원하고 일주일 뒤, 지현이가 응급실에 실려왔다. 온몸에 일어난 발진 때문이었다. 이식 거부 반응이었다. 발진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검붉은 얼룩이 남았다. “다시 학교에 가면 친구들도 만나야 하는데. 이런 모습으로는 만날 수가 없잖아요.” 최은석 간호사가 지현이를 토닥거리며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지현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이식 세포는 지현이의 온몸을 공격했다.

눈, 입, 장으로 이어지던 거부 반응이 폐까지 나타났다. 그때부터였다. 지현이가 최은석 간호사만 보면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거짓말만 하고… 좋아질 거라고 하더니 어디가 좋아졌어요. 엉엉”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는 잘 참아내던 지현이가 최은석 간호사 앞에서는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아이처럼 우는 지현이를 보며 최은석 간호사의 마음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죄송하다며 쫓아 나오는 지현이 어머니에게 미안한 건 오히려 최은석 간호사였다.


그리고… 20개월이 지났다
병원에서 지현이를 만나기로 한 날.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어오는 지현이가 보였다. 만나기 전, “직접 보시면 아팠던 애였는지 전혀 모르실 거에요.” 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현이는 건강해 보였다. “처음에 백혈병을 진단을 받았을 땐 섣불리 좌절하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호흡 조절이 되지 않아 코에 산소줄을 끼우고,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됐을 때… 그때는 다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때 지현이의 눈에 들어온 건 엄마였다. “엄마를 보니까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까지 나 때문에 이렇게 버텨왔는데…”


다시 일어서기로 한 지현이에게 남은 방법은 폐이식 수술뿐이었다. 2011년 12월,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의 집도 하에 폐이식 수술을 받았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이루어지는 조혈모세포 이식 합병증으로 인한 폐이식 수술. 소아로선 지현이가 첫 번째 사례였다.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집도해 주신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됐는데, 지현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이식 수술을 해야 할 지 의료진들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대요. 그때 유진호 교수님이 단호하게 지현이는 해야 한다. 진행하자고 강하게 밀어 붙여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지현이가 놓칠세라 엄마의 말을 잇는다. “서종진 교수님, 심태선 교수님도 너무 많이 감사한 분들이에요. 꼭꼭 적어주셔야 해요.” 이야기를 마치고 지현이가 엄마의 손을 다시 잡았다. “백혈병이라고 지현이한테 말해주던 날 약속했거든요. 엄마가 끝까지 너랑 함께 갈 거라고. 그날부터 어딜 가든 이렇게 꼭 손을 잡고 다녀요.”


이제는 네가 희망이란다
지현이가 머물렀던 146병동을 찾아갔다. 그곳은 조용하게 분주했다. “죄송해요. 병동에서 아이가 올 시간이라.” 초조한 듯 시계를 힐끔거리던 최은석 간호사가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현이가 폐이식을 받고 그렇게 좋아질 거라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어요.” 과거의 기억을 더듬던 최은석 간호사의 눈동자가 갑자기 흔들렸다.” 사실 폐이식 수술을 하고 나서는 바로 못 갔어요. 얘가 떠나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지현이가 회복되고 있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서야 지현이를 보러 갈 용기가 생겼어요.” 그제야 분주함 속에 아슬아슬하게 숨겨져 있던 눈물이 최은석 간호사의 볼을 타고 흘렀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흐른다.

지현이가 건강하게 회복해 준 덕분에 얼마 전 지현이와 같은 증상의 환자도 폐이식을 받고 건강해 졌다. “외래 진료받으러 올 때마다 지현이가 커피를 들고 찾아와요. 제가 커피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얼마 전 검정고시 합격하신 것도 아시죠? 올 때마다 좋은 소식을 하나씩 전해주니 지현이를 보면서 일하는 보람을 느껴요.” 이제는 지현이가 146병동의 희망이다.


녹음기가 꺼지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병원에 있을 때 지현이는 궁금한 게 참 많은 아이였어요. 아마 지현이가 대학에 가고, 남자 친구를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면 궁금한 게 더 많아질 지도 몰라요. 그럴 때 고민하지 말고 꼭 저한테 연락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지현이의 희망 만들기,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