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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사랑나무

저자 : 윤정화

‘바다의 신’과 ‘사랑의 자물쇠’ 


바다의 신 넵튠과 그의 아들 트리톤이 지키는 분수가 있다. 오른 손으로 동전을 쥐고, 뒤돌아서서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 이야기다. 소원을 들어주는 값은 동전 한 잎 이지만, 로마시에서 매일 수거하는 동전은 우리 돈으로 약 500만 원이나 된다. 이 돈은 전액 자선 사업에 쓰인다.

 

우리나라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연인들의 성지가 있다. 남산 타워 아래 철조망이 그곳이다. 연인들은 철조망에 자물쇠를 채우며, 자신들의 마음도 꼭꼭 걸어 잠근다. 열쇠는 숲속으로 던져 버린다.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자물쇠로 꽉 찬 철조망을 철거해 유리창으로 바꾸고, 철거한 자물쇠로 사랑의 나무를 만든다는 발표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병원에도 아픈 사람의 눈물과 한숨을 들어주는 ‘착한 나무’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잎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있다. 우리가 믿기만 한다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나무


착한 나무는 잎이 하트 모양이다. 아기 손바닥만한 하트는 볼수록 사랑스럽다. 5월에 하얀 꽃이 필 때는 솜사탕 같은 달콤한 향기가 난다. 나무는 바르고 곧게 위로 자란다. 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이, 가을에는 빨갛게 물드는 단풍이 어여쁘다. 우리 병원 정원에서 키가 가장 크고 개체수가 많은 계수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노랫말에 등장하는 바로 그 계수나무다. 일부에서는 월계수와 계피나무도 계수나무라고 부르는데, 우리 병원 계수나무와는 다른 나무들이다. 계수나무가 착한 이유는 나무에 전해오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것은 건강을 비는 사람들의 소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서쪽 달나라로 간 토끼와 계수나무, 그다음 이야기 말이다. 

 


‘강인한 생명력’과 ‘무병장수’의 상징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계수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아주 오랜 옛날, 중국의 오강이라는 사람이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게 됐다. 벌이 뭔가 하면, 그를 달나라로 귀양 보낸 후 계수나무가 쓰러질 때까지 도끼질을 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오강이 계수나무를 찍을 때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나무의 상처에서 금세 새살이 돋았다. 계수나무는 쓰러지지 않았고, 오강은 지금도 계속 벌을 받고 있단다.

 

두 번째 이야기는 ‘무병장수’ 이야기다. 옛날 옛적 굶주린 부처를 공양하기 위해 토끼 한 마리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다. 부처는 토끼의 은혜를 갚기 위해 토끼의 영혼을 달나라에 보내주었다. 그리하여, 달나라에서 살게 된 토끼는 계수나무 아래에서 절구질을 시작했다. 절구 안에 있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전 임상을 앞두고 있는 무병장수의 신약 후보물질이다. 신약개발은 험난한 길이지만, 토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오늘도 열심히 절구질을 하고 있단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처음 병원에 정원을 만들 때 이런 이야기를 알고 계수나무를 심은 것일까?

조경 설계를 담당했던 회사는 한강 선유도 공원과 청계천 조경을 설계해 국제적으로도 큰 상을 여러 번 받은, 업계에서는 첫 손 꼽히는 회사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단순한 정원이 아닌 숲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여, 다섯 종류의 나무를 골라 울창하게 심었고, 숲에서 볼 수 있는 키 작은 꽃과 풀도 심었다. 그중 숲의 느낌을 살리고, 병원 건물과 숲을 구분하기 위해 경계선에 심을 키 큰 나무가 필요했다. 이것이 계수나무를 선택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우리 병원과는 참 잘 어울리는 나무다.

 


아픔을 내려놓고 소원을 빌어보세요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는 하루 평균 만 명에 이른다. 중증질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한결 같이 묻는다. 살 수 있느냐고. 그러나 대답은 한결같을 수 없다. 어떤 이는 희망을, 어떤 이는 절망을 듣는다. 어떤 이는 막연한 기다림을 듣기도 한다. 때로는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절박한 환자를 매일 만나는 의료진, 그들 역시 끝없는 내리막길을 휠체어 타고 내려가는 듯한 날이 왜 없겠는가? 생명을 지키기 위해 환자와 의료진이 흘리는 그 모든 눈물과 한숨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그리고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조용히 착한 나무에게 소원을 빌고 싶다면, 신관 정원 흡연구역 뒤쪽에 동그마니 놓여있는 벤치로 가보자. 아름드리 계수나무들이 시원한 그늘과 함께 당신을 안아줄 것이다. 가볍게 걸으면서 소원을 빌고 싶다면, 중앙 주차장 건널목 앞 계수나무 오솔길로 가자. 실컷 울고 싶다면, 해가 진 후 나가면 된다.

 

이밖에도 잘 찾아보면 사랑스러운 계수나무가 곳곳에 보석처럼 숨어있다. 1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희망 나무’에만 소원을 빌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 초록이 무성해지는 계절, 착한 나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우리 병원에는 700여 그루의 계수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