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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심장암 걸린 아내 돌보는 남편

저자 : 윤정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남편을 찾아 나서다

 

한 달 전, 서울아산병원을 검색어로 웹서핑을 하던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심장암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글이었다. 심장에 양성 종양이 아닌 암이 생긴다니 생소하기만 했다. 그는 아내가 1년 전 서울아산병원에서 폐 일부와 심장 근육을 잘라내는 생사를 건 수술을 받았고, 이후 산 속으로 들어가 선녀와 나무꾼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사진 속 그들은 젊고 환했다. 벼랑 끝을 다녀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강원도 고성, 바닷가 앞 버스 정류장. 블로그에 나와 있는 산골마을 주소만 들고 찾아가는 길이다. 시골버스는 기다리면 온다는 말만 믿고 한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단다. 필자가 찾아가는 도원리가 금강산 남쪽 첫 봉우리인 신선봉 아랫마을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해준다. 마을로 들어서자 산안개가 자욱했다. 서울을 떠난 지 다섯 시간, 그렇게 그들을 만났다.

 

 

요리 잘하는 남자, 와인 좋아하는 여자 

 

부부는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건강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남자(37)는 180cm 가 넘는 키에 훤칠한 외모,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양식 조리사다. 여자(34)는 하얀 얼굴로 소박하게 웃는다. 와인의 향기에 푹 빠져 살아온 소믈리에다. 남자와 여자는 2년 전 레스토랑에서 함께 일하다 사랑에 빠졌다.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터라 서둘러 날짜를 잡았고 여자는 12월의 신부가 됐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은 6개월 만에 깨졌다. 지난해 7월 어느 토요일 새벽, 여자는 갑자기 심한 구토를 했다. 목이 조이는 듯한 통증으로 숨쉬기도 힘들었다. 배탈이 난 줄 알았다. 그런데 심장 초음파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남자는 즉시 회사에 사표를 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늘을 원망하기엔 자신들의 사랑이 너무 가여웠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이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벼랑 끝에서 손잡다. 

 

그녀의 심장암은 좌심실 근육에서 자란 악성종양. 혈관육종이 의심됐고, 수술을 받지 않으면 6개월 이상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수술의 예후 또한 비관적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종양 뿐 아니라 주변의 정상 심장 근육까지 잘라야 하는 매우 위험한 수술이란 점이다. 최악의 상황도 각오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환자 입장에서 득과 실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했다.

 

심장 수술 주치의였던 정성호 선생님(흉부외과)은 보호자에게 모든 경우의 수를 솔직하게 설명했다. 두 사람은 사흘을 고민했고, 결론은 ‘해보자’. 나쁜 생각은 일체 하지 않기로 손가락도 걸었다. 그리고 주치의에게 간절하게 매달렸다. 환자와 보호자의 의지는 강력했지만, 주치의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선배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수술방법을 고민하며 시간이 흘렀다. 환자와 보호자는 당시 주치의가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더 신뢰를 갖게 됐다고 고백한다. 결국 주치의는 수술을 결정했다. 이유를 묻는 필자에게 정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환자가 너무 젊어서요. 신랑 신부가 마주잡은 손을 보며 어떻게든 살려주고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제가 의사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해 준 소중한 환자입니다.”

 

 

15일 간의 휴가 

 

심낭 삼출액에 대한 검사와 폐로 전이된 종양을 절제하는 1차 수술을 먼저 한 후, 의료진은 환자를 퇴원시켰다. 몸도 추스르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민해보라며 보름의 시간을 준 것이다. 그 보름의 휴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여자는 친정 식구들과의 가족여행이 소원이었다. 멀리갈 수 없어서 계곡으로 소풍을 다녀왔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수술 후에 보자고 약속했다. 입원 전 날, 남편은 잠든 아내의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아주 오래 눈물로 기도했다. 필자가 여자에게 남편이 운 걸 아느냐고 물었더니, 여자는 빙그레 웃기만 한다. 
 
약속된 시간에 그들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수술 날 아침, 남편의 손을 잡고 수술실 복도를 지나는데, 여자는 뒤에서 오열하는 소리를 듣는다. 불쌍한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그 한마디만 토해내는 어머니의 울음소리였다. 수술실 문이 열리기 전, 여자는 어머니에게 간신히 목 메인 한마디를 한다. “엄마, 저 잘 할 수 있어요.”

 

 

슬픔까지 업고 가주는 친구 

 

여자는 약속을 지켰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지금은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추적 관찰을 하는 중이다. 산골 마을로 들어간 것은 지난해 11월.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은 제일 먼저 아내의 수술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 그리고 아내를 반쯤 일으켜 안아주며 등 마사지를 해준다. 아내는 남편이 따온 산나물로 반찬을 만들고 된장찌개를 끓여 상을 차린다.

 

오후에는 두 시간씩 남편의 손을 잡고 뒷산에도 오른다. 결혼 1주년 기념일에는 정동진에 가서 바다를 보며 촛불도 껐다. 그들이 되찾은 것은 단순한 생명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따스한 체온이고, 함께 바라보는 겨울 바다이며, 수줍은 들꽃이다. 
 
여자는 연애할 때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났냐고 남자에게 눈을 흘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만나려고 그토록 오래 기다렸나 싶단다. 인디언 말로 ‘친구’는 ‘슬픔까지 업고가 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앞으로  또 어떤 시련이 이들의 사랑을 힘들게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으리라. 그녀의 곁에 슬픔까지 업고가 주는 친구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