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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아주 특별한 칭찬

저자 : 윤정화

 

 

“아들의 영혼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요”


146병동은 소아암 환자가 투병하는 곳이다. 지난 가을 이곳에서 골육종으로 어린 아들을 떠나보낸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장례를 치르고 닷새 후 열린 상담실을 찾아왔다. 아들의 영혼을 위해 지하 1층 고객 칭찬상 패널에 담당 간호사 사진이 걸어 달라며 눈물로 간청했다. 아직 떠나지 않은 아들의 영혼이 병원을 돌아다니다 정말 기뻐할 것이라고도 했다.

 

칭찬상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머니의 소원대로 담당 간호사의 환한 얼굴은 4월 말 현재, 지하 1층에 게시돼 있다. 생떼 같은 자식을 보냈단다. 그것도 일주일도 안됐단다. 병원 쪽은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달려 오셨단다. 146병동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내기 간호사에게 생긴 일


송지선 간호사를 만난 날, 앳된 그녀는 살짝 처진 눈초리에 생글 생글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2009년 2월 입사했다고 한다. K군을 만난 것은 작년 8월 중순. 어려서부터 골육종을 앓아온 열 살 K군은 눈으로 전이가 돼 눈가가 불룩했다. 세 가지 항암제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10분에 한 번 씩 벨이 울렸다. 당시 송 간호사는 병원 생활  6개월을 갓 넘긴 새내기였다. 모두 열 두 명의 환아를 맡고 있었지만, K군에게만 달려가는 상황이 계속 됐다.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벨이 울려도 꾀를 부리며 냉큼 달려가지 않았다.
선배들 눈에는 왜 그런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보이는지…. 잠시 후, 선배 간호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선배는 ‘가족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퇴근 후 송 간호사는 K군 생각을 아주 오래 했다. K군에게, 어머니에게 미안해졌다. 여기까지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송 간호사는 다음날 조금 특별한 행동을 한다.

 

다음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그녀는 병실로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벨을 누르시면, 힘들어하는 K군에게 10분 안에 진통제를 놔주겠다고. 그리고 죄송하다고. 당시 병세가 심해지는 아들을 지켜보며 우울증 치료를 받던 어머니는 송 간호사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송 간호사도 많이 울었다. 창가 자리에서 게임만 하던 까칠 소년은 그날 이후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눈은 마주치지 않았고 퉁퉁거렸지만, 1회용 커피를 숨겨놓았다가 그녀에게 주었다. 눈에 안약을 넣는 것도 그녀에게만 해달라고 했다. 배시시 웃는 날도 많아졌다. 그렇게 K군은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인사

 

9월 중순, K군의 병세가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1인실로 옮겨졌다. 간호사들은 30분에 한 번 씩 K군을 들여다봤다. 불안해하는 어른들과 달리 K군은 잘 버텼다. 송 간호사는 퇴근 할 때마다 들러 손을 잡아주며 인사했다. “선생님 갈게. 내일 꼭 보자”.  K군이 세상을 떠나기 전날, 그날도 송 간호사는 K군에게 들러 퇴근 인사를 했다. “내일 꼭 보자” “선생님, 손 잡아주고 가세요.” 그리고 다음날 오후 3시, 퇴근 준비를 하던 그녀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K군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새내기 간호사에게 처음 맞닥뜨린 죽음이었다.

녀석을 보면 무서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옆에서 오열하던 어머니는 그녀를 보자 고맙다고만 했다. 그녀는 여기까지 이야기하며 담담하고 침착했다. 촌스럽게 정만 많은 필자가 훌쩍 거리면, 잠시 눈빛이 흔들리긴 했지만, 그녀는 눈에 힘을 주고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기억을 풀어냈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녀가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떠난 녀석을 닦아서 새 옷을 입혀 주려고 했어요. 가슴에서 포트를 빼는데, 거기에 ‘K야!! 파이팅’이라고 제가 쓴 글씨가 보이더라구요…, 엉엉엉…, 장례식장도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일하고 개인감정 하고 구별 못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엉엉엉…, 학교에 못가서 친구도 없었을 텐데 떠나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엉엉엉…, 까칠했던 녀석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예요. 힘들어서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했는데, 녀석 보내고 나니 이젠 그 말 못하겠어요.”
이쯤 되면 듣는 사람도 눈물을 피할 길이 없다. K군 어머니가 병원으로 달려오던 그 마음도 짐작이 간다.

 

의료진 누구에게나 의미가 남다른 ‘첫 환자’가 있을 것이다.

생명을 붙잡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했는지 뜨거운 고민을 안겨주었던 ‘첫 환자’, 간절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이 지금도 불쑥 불쑥 나를 깨우는 존재…, 그녀에게 K군이 그런 존재였다. K군으로 하여 제대로 성장통을 앓은 것이다. 송지선 간호사는 입사 당시 1지망 소아과, 2지망 소아과, 3지망도 소아과를 썼다.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아픈 아이들의 곁을 지키고 싶단다.

 

보이지 않는다고 첫사랑이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그 마음이 오래오래 그녀를 지켜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끝으로, 아주 특별한 칭찬을 해주신 K군의 어머님께 깊은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