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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에빌린 패러독스

                                                   

세상을 살다 보면 남들이 다 하니까, 또 해야 한다니까 별 생각 없이 따라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고 무심코 따라 했지만 나중에 곰곰이 따져보면 그 일을 왜 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에빌린(Abilene) 패러독스라고 한다.

 

‘제리 하비’라는 조지아대 경영학과 교수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집어낸 현상이다.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여름날 일요일 처가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데 장인이 에빌린에 가서 외식할 것을 건의한다. 식구들 모두 80km나 떨어진 곳까지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다들 별 이견 없이 에빌린으로 갔다. 하지만 다녀와서 생각해보니 밥 한끼 먹으려고 왜 그 먼 곳까지 가서 고생을 했는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목소리 높은 사람들의 주장에 밀려 별다른 저항 없이 따라 하는 현상이 에빌린 패러독스로, 우리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벌어지고 있다. 주말에 부서 직원들과 함께 봄맞이 야유회 겸해서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주말 일기예보에 큰 비가 온다고 산행이 갑작스레 취소되었다. 하지만 직원들 대부분 섭섭해 하기보다는 산에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 집에서 쉬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내심 좋아한다. 대다수 직원들은 자기 주장이 강한 일부 직원들 의견에 별 생각 없이 산행을 해야 하나보다 체념했었던 것이다.

 

에빌린 패러독스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의약분업을 한 사례로 들 수 있다. 대다수 의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료 관리학을 전공하는 몇몇 교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약분업을 도입했지만 몇 년이 지난 현재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병원 내에 있던 멀쩡한 약국을 다 없애버려 환자들이 병원에서 약을 받지 못하고 병원 밖 약국까지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만 남았을 뿐이다.

 

근래 도입된 의학전문대학원도 마찬가지이다. 왜 의과대학 교육이 2년이나 늘어나야 하는지 아무런 공감대도 없는 상태에서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누구도 이 제도의 장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 한다. 이공계 대학이 의과대학원 입시 준비학원으로 전락하는 부작용만 남았을 뿐이다. 우리나라 이공계가 붕괴되는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서 당시 목소리를 높인 몇몇 교수들이 지금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로스쿨을 한다고 판검사, 변호사들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의 법률 수혜입장에서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시작하기도 전부터 정원 배정 문제로 사회 전체가 시끄럽다. 의학전문대학원과 마찬가지로 왜 로스쿨로 가야 하는지 수긍할만한 설명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최근에 아파트 평수(坪數) 사용을 금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친숙한 평수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제곱미터 사용을 강요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 에빌린 패러독스이다. 사회적인 임팩트가 큰 일을 할 때에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속단하지 말고 꼭 해야 하는 일인지, 해도 되는 일인지 꼼꼼히 평가하고 중지를 모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척추분야에서는 매년 많은 신기술(新技術) 치료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 치료법들의 도입 초기에는 남들이 다하니까, 또 신기술이니까 비판 없이 널리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살아남는 신기술은 그리 많지 않다. 1980년대 초반 디스크를 정복하는 치료법으로 소개되었던 ‘카이모파파인 효소주사’요법부터 최근의 ‘레이저 수술’까지 반짝하다가 사그라진 신기술이 너무도 많다. 이들 모두 소개 당시에는 획기적인 치료법으로 매스컴의 각광을 받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세월이 흘러 생각해보면 당시 왜 그런 치료법에 대다수의 척추외과 의사들이 동조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에빌린 패러독스인 것이다. 의학의 다른 분야에도 척추분야와 마찬가지로 에빌린 패러독스의 사례가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에빌린 패러독스의 어리석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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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성

    정형외과,척추측만증센터

    측만증(소아척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