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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루브 골드버그 장치

                                                 

루브 골드버그(Reuben Goldberg)는 온갖 기계 장치에 짓눌리는 현대인의 일상을 풍자(諷刺)한 것으로 유명한 만화가이다. 188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루브 골드버그는 아버지의 권유에 못 이겨 공학을 전공하였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는 지역 신문에 스포츠 만화를 그리는 것을 계기로 만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1910~20년 당시는 전기, 전화, 자동차를 비롯한 다양한 기계들이 사람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루브 골드버그는 그 기계들이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세심하게 관찰하였다. 그 결과 기계들이 제공하는 엄청난 편리함에 매료되는 것과는 별개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기계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간파하였다.

 

기계로 인하여 자신들이 익숙했던 기존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상력, 유머를 동원하여 기계를 풍자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만화 속에서 기계는 “최소한의 성과를 위해서 최대의 노력을 쏟는 인간의 어리석은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의 만화는 큰 인기를 끌었다. “톰과 제리” 만화 영화에도 루브 골드버그가 고안한 엉뚱한 기계들이 많이 등장한다.

 

1930년대부터 루브 골드버그라는 이름은 “간단히 행해질 수 있는 일을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무언가를 말할 때 쓰여지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웹스터 사전에 같은 뜻을 가진 형용사로 올라있다. 사람의 이름이 형용사로 쓰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매년 미국의 퍼듀(Purdue) 대학에서는 “루브 골드버그” 콘테스트가 열린다. 이 콘테스트에서는 창문을 닫는 일, 신발 신는 일, 밥 먹을 때 입 닦는 일, 연필 깎는 일 등 우리가 일상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동작들을 가장 어렵고, 복잡한 작업으로 변화시키는 첨단과학의 기계장치들이 경연을 벌인다. 쉬운 동작을 가장 어렵게 만들수록 1등이 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로봇 수술, 레이저 수술, 컴퓨터 수술과 같이 첨단과학을 앞세우는 치료법에 대해서는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뭔지 잘 모르지만 기존 치료법보다 월등히 좋은 것으로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척추 분야에도 여러 가지 첨단 수술법들이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기계들이 모두 유용한 것은 아니다.

 

내비게이션(Navigation) 수술법도 한 가지 예다. 이 기계는 현대 척추수술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구인 나사못(screw)을 3차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하여 척추뼈에 쉽게 삽입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다. 소개 당시에는 나사못 삽입에 따르는 기존의 여러 문제점들이 다 해결될 것 같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 하고 있다.

 

능숙한 척추외과 의사가 나사못 한 개를 삽입하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반면, 내비게이션 기계를 이용하여 삽입하는 경우 나사못 한 개당 15~20분의 시간이 소요되어 수술 시간이 엄청 길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확성, 안전성 문제도 확실치 않아 현재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루브 골드버그 장치인 것이다.

 

일부 내시경 디스크 수술도 루브 골드버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30분이면 끝날 수술이 2~3시간씩 걸리고, 재발도 많고, 신경이 손상을 받는 가능성도 기존의 수술보다 훨씬 높은데도 단지 내시경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또 비보험 시술이라는 이유로 점차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요즘 로봇 수술이 유행이다.

 

병원마다 고가(高價)의 로봇 수술장비를 도입하고 홍보에 열중하고 있다. 새롭게 개발된 로봇 기계를 이용하여 수술을 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우려(憂慮)되는 것은 과장 홍보와, 고가의 수술비용에 따른 비용-효용성의 문제이다. 일반인들에게 로봇 수술은 “수술 명령을 내리면 로봇이 척척 알아서 수술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로봇은 수술의 가장 단순한 동작, 예를 들면 내시경을 지지하고 있다던가, 내시경의 높낮이를 조정하는 등 초보적인 일을 할 뿐이다.

 

최근 점차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다빈치라는 고가의 로봇 기계도 마찬가지이다. 의사가 손을 닦고 직접 수술을 안 할 뿐이지 수술실 내에서 의사가 일일이 기계를 조작해야 하는 것은 기존의 내시경 수술과 다를 바가 없다. 로봇 수술이라는 용어 자체가 적절치 않은 것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여 수술을 하는 것은 의료의 어느 분야에서건 정말 요원한 일이다. 로봇이 아무리 뛰어나도 수술 시 요구되는 인간 두뇌의 종합적인 인지(認知) 능력, 오감(五感), 섬세한 손놀림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로봇이 수술하는 것처럼 과장하는 기사나 광고를 흔히 접하게 된다.

 

로봇 수술의 비용-효용성의 문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다빈치 기계가 일부 수술에서 종래의 수술법으로는 보기 어려운 사각(死角) 지대를 잘 보여주기 때문에 유용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장점 때문에 1,000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굳이 다빈치를 쓰지 않아도 될 수술에서 고가의 기계를 사용하는 일부 병원들의 행태이다. 예를 들면, 피부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어 훤히 잘 들여다보이는 갑상선 수술에서 다빈치 기계를 사용한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윤리적인 문제라고 하겠다.

 

새로운 기계를 개발하여 기존의 수술법을 간편하고 안전하게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첨단의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 개발된 기계가 오히려 쉬운 수술을 어렵게 만드는 루브 골드버그 기계인 경우도 적지 않다. 간단히 행해질 수 있는 수술을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수술하는 기계, 가장 작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가장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기계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계를 홍보할 때는 겨우 달성한 쥐꼬리만한 성과를 대단한 것인 양 과대 포장함으로써 새로 개발된 기계의 문제점과 실체를 덮어버리기도 한다.

 

첨단 과학을 이용한 치료법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병원에서 유독 첨단과학 치료법을 앞세운다면 의도적인 홍보, 즉 상술(商術)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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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성

    정형외과,척추측만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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