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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외과의사도 피가 무섭다

                                                    

외과 의사들은 수술 도중 칼이나 바늘에 찔리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피가 튀어 눈에 들어가면 기분이 굉장히 찝찝하다. 혈관으로 직접 피가 들어간 것과 같기 때문이다. 수술 전에 간염, 매독, AIDS 등의 검사를 하여 사전 조치를 취하기도 하고 수술 도중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만 간혹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UCSD(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로 1년 연수(硏修)를 간 첫 달, 척추기형 수술에서 조수를 서던 중 피가 튀면서 눈으로 들어갔다. 늑골을 자르고 척추뼈의 앞쪽으로 접근하는 측만증 수술에서 교수가 늑골을 자르는 순간 수술 시야에 고여있는 피가 튄 것이다.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약간 흘러내린 안경 너머로 피가 들어갔다. 순간 당황했지만 ‘의료선진국인 미국에서 웬만한 수술 전 검사는 다 했겠지’ 생각하면서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수술 조수를 계속 했다. 수술을 마치고 동료 미국의사에게 눈에 피가 들어갔다고 얘기했더니 화들짝 놀라며 교수에게 긴급 사안으로 보고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어리둥절해 하는 필자에게 교수가 직접 와서 환자의 피 검사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수술 전 AIDS 검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술했던 환자가 AIDS인지 아닌지 잘 모르니 필자가 원하면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피검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피검사를 해서 환자가 AIDS로 나오면 나는 어쩌라고”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치지 않는다고 했던가. 나를 둘러싸고 걱정을 하는 미국의사들 앞에서 대범한 척하며 피검사는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부터 혼자서 끙끙 고민을 해봤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집에서 걱정할까 이야기도 못 하고 식구들 몰래 수저, 식기를 따로 사용하는 등 미국연수 기간 내내 “먼 미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재수 없게 AIDS 걸리는 것 아닌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혹시나 AIDS에 걸렸을 경우 난잡한 사생활 때문이라는 오해는 피해야겠기에 알리바이를 확실히 하듯이 당일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몇 년 후 텍사스의 한 병원에서 다시 연수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 보고 싶던 고난도의 측만증 수술이 수술 당일 아침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환자가 수술 전 검사상 AIDS로 판명되어 수술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어리둥절해졌다. “수술 전에 AIDS 검사를 할 수 없는데 어찌된 일인가?” 몇 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나의 에피소드를 들은 텍사스 의사들은 캘리포니아 놈들 웃긴다고 마구 비웃는다. 텍사스는 캘리포니아와는 달리 수술 전 AIDS검사를 확실하게 한단다. 주(州)마다 법이 다른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 황당 그 자체였다. 외과의사라는 직업이 겉으로는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3D 직업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의대 졸업생들이 외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걱정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수술 전 AIDS 검사를 금한 캘리포니아의 규정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UCSD에서 연수하던 1년 동안 과거에 수술을 많이 받았던 환자 또는 수혈을 많이 받았던 환자를 수술할 경우 “AIDS의 가능성이 있는 환자이니 우리 서로 찔리지 않도록 조심합시다”라면서 수술을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참 난감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는 것만큼 의료진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환자의 권리만 앞세우는 균형감각을 잃은 아마추어 시민단체의 압력으로 생긴 규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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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성

    정형외과,척추측만증센터

    측만증(소아척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