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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어느 곤충학자의 진지(眞摯)한 결론

저자 : 이춘성

“곤충학자가 벼룩에 관한 실험을 하였다. 1단계 실험에서 벼룩에게 ‘뛰어’ 명령하니까 벼룩이 톡톡 잘 뛰었다. 2단계 실험에서 벼룩의 다리를 다 떼어내고 다시 ‘뛰어’ 명령하니까 벼룩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 단계의 실험을 통하여 이 곤충학자는 ‘벼룩은 다리를 떼어내면 잘 듣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어리석은 곤충학자의 황당한 결론이라고 웃고 흘려버릴 수도 있는 농담이다. 하지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주변에서 이와 같은 황당한 일들을 종종 접할 수 있다.

40대 초반의 남자 환자 A씨는 오랜 시간 바둑을 두고 난 후 허리가 뻐근한 증상이 생겨 MRI 검사를 받았다. MRI 사진 상 큰 이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불안해 척추전문병원을 찾았더니 요통의 원인이 디스크의 이상이라면서 고주파치료를 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주파치료를 받고 몇 달이 지나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다른 전문병원을 찾았더니 새로 나온 치료법이라면서 오존치료를 권했다. 오존치료에도 불구하고 요통은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져 일상생활이 힘들게 됐다. 이 병원, 저 병원 찾아 다녔지만 뾰족한 방안은 없었다. 오히려 “왜 오존치료, 고주파치료 같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받아 허리를 망가뜨렸느냐”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듣고 너무 억울하여 불면증에 빠지고 매일 술을 마시고, 사회생활을 거의 못하는 폐인(廢人) 상태가 됐다.

 

오존치료나 고주파치료는 한때 새로운 디스크 치료법이라고 언론을 통하여 크게 소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특히 오존치료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치료라고 비난한다. 이런 치료방법들을 처음 소개했던 의사들은 “치료를 해서 요통이 좋아졌다. 그렇다면 치료효과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앞의 곤충학자와 별로 다르지 않다.

 

오존치료나 고주파치료로 요통 증상이 좋아진 경우 과연 이런 치료 때문인지, 치료 받고 누워서 쉬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함께 사용한 진통소염제나 물리치료 때문인지 분명치 않다. 요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 변수들을 하나하나 과학적으로 검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존치료나 고주파치료를 하고 증상이 좋아졌으니까 이들 치료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앞의 곤충학자의 비과학적인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어떤 특정 치료법이 효과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증상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들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하여 이들 치료방법이 몇몇 환자에서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환자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일반화시켜서는 안 된다. 일반화시키는 행위 역시 앞의 곤충학자와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동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엉뚱한 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A 환자의 사례를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번째, 자신의 신체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허리 아픈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어느 정도 불편함은 감수한다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졌더라면 A 환자와 같은 불행한 사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바둑을 두고 나서 허리가 뻐근하였을 당시 허리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스트레칭 운동만 해도 증상이 좋아졌을 것이다. 운동치료는 다른 어떤 치료보다 가장 먼저 시도해보아야 할 치료로, 대부분의 경우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좋다.

 

세 번째 교훈은, 꼭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반드시 과학적, 객관적으로 검증된 치료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 입장에서 어떤 치료법이 검증된 방법인지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검증되지 않은 방법일수록 대개 달콤한 말로 포장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또 첨단의 치료법이라는 인상을 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레이저, 고주파, 오존 등이 그 예다.

 

공자님은 “말을 잘하고(교언, 巧言), 얼굴빛을 좋게 하며(영색, 令色), 달콤한 말을 하는 재주”를 가장 싫어하셨다고 한다. 온갖 교언영색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치료법의 홍수 속에서 환자들 스스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바른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지침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지침은 수년 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마련한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치료 감별법(또는 사이비 의료 감별법)
1. 난치병에 대해서 완벽한 치료효과를 보장한다.
2.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등의 유명인사의 완치 사례나 추천을 활용한다.
3. 왜 완치될 수 있는지 과학적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
4.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치료법은 해로우며 자신들의 치료법을 안 쓰면 큰일날 것처럼 이야기한다.
5. 자신들의 치료법은 기적이라면서 치료법의 근거 등을 물으면 비밀이라고 이야기한다.
6. 현재는 비판 받지만 미래에는 인정받을 것이라거나, 기존 의료계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7. 비용이 턱없이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