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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칼럼

클로이츠펠트-야콥병

저자 : 김종성

 

예전에는 그 존재조차 몰랐던 희한한 적의 출현, 바로 슬로 바이러스(slow virus)이다. 슬로 바이러스의 선구자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칼턴 가이두섹 박사이다. 가이두섹 박사는 일찍이 뉴기니 고원지대 원주민에게 집단으로 발병하는 ‘쿠루(kuru)'라는 질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병에 걸린 환자는 파킨슨씨병과 치매가 섞인 증세를 보이며 점차 쇠약해지다가 결국은 2년이 채 못되어 사망하고 만다. 사망할 무렵 환자는 심한 치매상태로 꼼짝 못하고 누워서만 지내게 되는데 가이두섹 박사는 천막집 안으로 자식들이 들어가서 고통에 신음하는 부모를 안락사시키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가 조사해보니 그 지역에서는 죽은 이를 기리는 의미에서 시체의 뇌를 나누어 먹는 장례 습관이 있었다. 그는 조상의 뇌에 있는 병원체가 후손에게 전파되는 것이 이 질병의 감염경로라 추정하고, 원주민 대표의 도움을 얻어 이런 의식을 금하게 하니 이후 환자의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쿠루와 비슷한 질병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런 병들은 인간뿐 아니라 양, 소, 쥐 등에서도 발견된다. 신기하게도 슬로 바이러스는 다른 세군들과는 달리 종(種)을 초월하여 감염될 수 있다. 예컨대 슬로 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의 뇌조직을 쥐에게 주입하면 쥐도 이런 병에 걸리게 된다.

 

동물에 생기는 슬로 바이러스 중 제일 유명한 것은 요즈음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광우병’일 것이다. 이 병은 1986년 영국 아일스 지방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비틀거리며 걷다가 사망한 소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죽은 소를 조사해보니 뇌가 공기 주머니처럼 변했고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이후 광우병의 발생빈도는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1995년까지 영국에서만 무려 15만 마리 이상의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다. 이처럼 급격하게 광우병이 증가한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학자들은 1970년대 후반에 소의 사료를 만들 때 ‘스크래피(양에서 나타나는 슬로 바이러스병)’에 감염된 양의 시체를 갈아서 넣은 것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슬로 바이러스는 종을 초월해 감염되므로 양에서 스크래피 형태로 나타났던 슬로 바이러스가 이를 먹은 소에게서 10년 후 광우병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쿠루병이 거의 사라진 지금 인간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슬로 바이러스(엄밀히 말하자면 슬로 바이러스는 실제 바이러스는 아니고 단백질이다)는 1920년대 크로이츠펠트(Creutzfeldt)박사와 야콥(Jacob) 박사에 의해 발견된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다. 이 질환은 몇 년간 치매가 급속히 진행되며 죽어 가는 불행한 병으로, 미국에서는 매년 100~200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정확한 발생 빈도는 밝혀지지 않으나 이 병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슬로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한림대학교 김용선 교수에 의하면 지금 세게적인 화두는 과연 “광우병에 걸린 소를 인간이 먹으면 슬로 바이러스병에 걸리느냐”라고 한다. 실제로 이런 가능성에 겁을 먹은 영국 정부는 무려 5백만 마리의 소를 도살해 버렸다. 하지만 슬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를 이미 많은 인간들이 먹었음은 분명하다. 아니 지금도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우리에게 클로이츠펠트-야콥병이 생기는 것일까? 그래서 요즈음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직 그 해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광우병에 걸린 소의 조직을 양, 돼지 등에게 먹이면 수년 내에 그들은 슬로 바이러스 질병을 일으킨다. 사람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또 한가지 불길한 징조는 영국에서는 쇠고기 가공 처리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로이츠펠트-야콥병 환자가 많이 발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향후 수년 혹은 수십년 이내에 영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이런 환자들이 대규모르 발생한다면 이는 인류의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이 병은 아직 아무런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무서운 병임에 틀림없다. 진단이 되면 그 어떤 치료법이나 약물치료도 없기 때문에 천천히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